내가 잡은 손
아주 어렸을 때임에도 기억에 생생한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있다. 부모님과 차에 내린 나는 결혼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한참을 떠들며 걷고 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어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빠가 아니었다. 나의 생생한 기억은 그 순간의 무섭고도 창피한 느낌이다.
“낯선 사람 따라가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다 집을 돌아가려다 길을 잃어버리고 엉엉 울었던 순간과는 달랐다. 아는 줄 알았던 손, 내가 그 잠깐의 길, 적어도 결혼식장이라는 도착지를 가는 줄곧 아빠의 손이라고 생각했던 손이 전혀 모르는 사람의 것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더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한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하고 계셨다. 어쩌면 내 이야기하느라 바빠 아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로 누군지 모를 아저씨의 손을 놓고 아빠에게 달려갔다.
가끔씩 그때를 떠올려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손에서 내 손을 빼고는 아버지 아닌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섭고 창피했던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내 모습을 아버지는 뒤에서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잡은 손을 확인해본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들에 정말 순전히 아버지와 걸었는지, 걷고 있는지, 내가 잡은 손 그리고 아버지의 표정을 확인한다. 길을 걷다가도 그때를 떠올리고는 하늘을 쳐다본다. 역시 확실한 방법은 쳐다보는 것,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들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아찔하고 창피한 순간일까. 게다가 그저 그런 감정을 넘어 그 결과는 영원히 길을 잃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일 수도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이 잡은 손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걷지 않을 것이다. 그들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의심보다는 확인이 필요하다.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 13v5] -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얼마나 진심이었을지 아는 것처럼 언제든 이 손을 놓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기억하고 매일같이 공포영화의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께 말하듯 그 손을 꼭 붙잡아달라고 말하고 목소리를,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 정말이지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은 그분께 꼭 붙어 있는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걷는 것을 동행이라고 말하지만 길 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도 그 길을 함께 걷는지는 함께 걷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 결혼식장으로 향하던 어린 내가 그 결혼식장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빠로 인함이었다. 바보같이 앞서버린 나는 곧장 뒤로 달려가 아빠의 품에 안겼다.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바뀌길 기다리며 오랜만에 생각났던 내가 붙잡았던 낯선 사람의 손. 하지만 지금 내 손 붙잡고 계신 아버지는 부끄러움보다 달려가 안긴 그 느낌을 기억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기 원하신다. 하늘을 보고 또 감사한다. 내 손 붙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