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천 원만
편의점으로 나서려는데 카드보다는 현금이 좋겠다 싶어 방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곳저곳 한참을 뒤지며 모은 동전을 가지고 집 밖을 나서려는데 소파에 앉아 계신 아버지께서 자신의 것도 사다 달라며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주셨습니다.
“아빠 천 원만”,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왜 이 말을 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보며 최근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니 아버지와 참 친밀했던 제게 어느 순간 어려워진 말들이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말 자체가 그랬고 방안에 들어가기 전 이미 현금을 가지고 계실 줄 알았던 아버지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도 그랬습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하지 않는 말,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하지 말아야 요청으로 느낀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제 방을 뒤지는 수고를 한 것은 제가 내 돈을 벌 정도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쉽게 내밀 수 있었던 제 손이 커졌다고 생각하며 아버지 앞에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서먹해진 아버지와의 사이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걸 두고 기도해도 되는 걸까?”, “아 이제 그런 걸 두고 기도 못하겠어.”라고 고민하는 경우를 봅니다. 내가 가진 고민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사소하게 느껴지거나 이 정도 신앙생활과 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성숙한 모습, 성숙한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분명 우리의 대부분의 문제는 하나님 앞에 한없이 작은 일일 것이며 우리는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 성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에게 지금 기도 응답을 많이 해주신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중고등학생의 말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자존심을 세우려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성숙한 대화는 그저 점잖을 떨며 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그 관계를 정확히 인식한 거짓 없는 솔직한 대화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와 성숙한 대화를 원하실까 싶습니다. 우리의 키가 얼마나 자랐건, 어떤 성장을 이룬다 한들 아버지에게는 언제라도 어린 자녀일 것이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기를 원하시기보다 우리 자체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봅니다.
이런 기도가 맞나, 저런 기도가 맞나 하는 고민마저 부모님이 자녀와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고민으로 두지 말고 모두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이미 모든 사소한 필요를 아시는 (마 6:8) 아버지께는 자녀답게 나아가는 것 자체가 좋은 기도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