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교사다
유럽에서 함께 지냈던 공동체 사람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학생으로 왔던 스탭으로 왔던 심지어 가르치러 왔던 서로를 어떤 수식어를 붙여 부르지 않았습니다. 조슈아는 조슈아, 헤이든은 헤이든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자신의 직업을 선교사missionary라고 소개해두었습니다.
저는 이점이 참 좋으면서도 신기했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교사라고 하는데 있어 어떠한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거리낌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마다 선교사이며 그리스도가 없는 곳은 선교지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유명해진 문구이지만 선교사‘적’ 삶을 추구하지만 스스로를 선교사로 여기지는 못합니다. 확실한 구분이 있습니다. 선교사‘적’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파송을 받고 일하는 분들은 선교사‘님’이라고 하는 구분, 서로의 간격을 아주 멀리 둡니다.
그들은 간사 학생, 선교사나 형제, 자매 등의 수식어가 필요한 한국 문화와는 달리 어떠한 위아래가 없이 서로를 대했고 간사, 학생의 역할 차이는 있어도 모두 배우는 자세로 섬기는 자세로 더 아는 것에서는 더 나누고 부족한 것에서는 솔직하게 도와줄 것을 요청하며 서로를 대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문화는 너무나도 달라 이 자체가 통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하나요. 그 어디에도 선교사라는 단어도 없지만 선교사적이라는 말은 더더욱 없습니다. 물론 오지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다르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 그들을 선교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며 항상 드는 의문 도대체 선교사란 무엇인가요?
저는 7살에 처음 제 꿈을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정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를 선교사라고 부른다고 장래희망 란에 간단히 선교사라고 짧게 직업처럼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파송을 받아 선교지로 나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접고부터는 어느 누구에게도 저를 선교사라고 소개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는 노회와 교회에서 인정하고 파송했을 때 선교사가 됩니다. 이것은 물론 이제는 목사와 전도사가 직업이 된 것처럼 선교사를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의 본래 의미처럼 선교사는 occupation의 직업이라고 보다는 Job이라는 역할입니다.
저는 그래서 그때만난 청년들이 학생 간사 상관없이 정체성을 선교사라고 부르는 모습에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 모든 시간 살아가며 내 스스로를 선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숨쉬시며 내가 가는 모든 곳이 내게 선교지였고 나는 그리스도로 살아내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당히 말해봅니다. 나는 선교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