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흔적
“아름다운 간증을 많이 만들고 오라.”
입대 전 들은 말씀으로, 나는 준비도 하고,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몸과 삶에 흔적을 새기셨다.
전역을 앞둔 마지막 휴가
2015년 8월 20일, 마지막에서 두 번째 휴가를 마치고 전역 후의 계획들을 다시 생각하며 복귀 버스에 올라탔다. 전역을 20일 앞으로 둔 나는 14일의 휴가가 남아 있었고, 부대에는 주말도 있었기에 이제는 정말 군 생활이라고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부대까지 가는 버스를 한가로이 기다리던 나는 진한 글씨로 나타난 뉴스 글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몸이 차가워졌다.
북한의 포격 도발.
새로고침을 계속 눌렀다. 잠시 후 우리 쪽에서의 대응 뉴스를 보았고, 행정반에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계속될 뿐이었다. 이미 비상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터미널 주위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떠들고 있었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뉴스들이 거짓말 같았다. 먹고 마시며 결혼하던 사람들을 바라보던 노아의 눈빛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부대에 도착하자마자 복귀 절차는 모두 생략된 채 방탄과 총을 챙겨 내려갔다. 전쟁을 준비할 때만 나눠진다는 물자들이 내 앞에 놓였고, 무전기로 언제라도 대응하라는 전파가 들려오니 정말 전쟁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도저히 현실 같지 않았지만, 막연한 ‘혹시나’의 느낌과는 달랐다.
정말 죽는다면
어릴 적부터 선교를 꿈꿔왔고, 선교사님들의 삶에 대해 들으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순교’라는 상황을 수도 없이 상상해 왔다. 죽음은 언제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이서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위험한 지역이라며 조심하라던 나라를 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기였다.
포탄이 날아와 불바다가 된다면? 더 무서운 건 화생방전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불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것.
상황이 터진다면, 그것이 나의 마지막 행동이리라. 그렇다면 죽을 수 있겠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것이 담대함임을 알았다.
48시간 안에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는다면 무차별 공격을 하겠다는 위협이 있었다. 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초조하게 그 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47시간이 되었을 때, 함께 있던 후임이 물었다.
“1시간 뒤에 정말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병장님은 뭐든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너와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두렵고 떨렸지만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나다니는 얼굴마다 웃으며, 그러나 진지한 마음으로 예수님 믿고 천국 가자는 말을 계속하게 되었다.
쓸모가 없다
살면서 “쓸모가 없다”라는 말을 느껴본 적은 있어도,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위에 있던 간부 한 명이 어깨가 아파 힘들어하는 내게 특유의 손가락짓을 하며 말했다.
“넌 진짜 쓸모가 없다.”
서른 살이었던 동기 형에 비하면 전혀 늦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아는 동생들의 전역을 지켜보며 조금은 늦은 입대를 기도로 준비했었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님을 말하고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다쳐버린 어깨는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늘 말이 돌기 마련이었다. 10대 시절부터 입대 전까지 여러 나라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온 나는 루머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대에서는 달랐다.
부상으로 인해 검사를 받는 데 오래 걸리자,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오해가 생겼고, 하지 않은 말과 행동에 대한 소문도 돌았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동기들과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버텼지만, 쓸모 있기는커녕 짐이 된 것 같은 시간이었다.
특히 한 동기는 괴롭힘으로 힘든 나머지 ‘자살’과 전역, 보직 변경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동기들 모두 염려하며 위로했고, 나도 말했다.
“힘든 일 있으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우리에게 털어 달라. 기도하겠다.”
그런데 이 말이 문제로 번졌다. 한 선임이 ‘마음을 토해내라’는 말을 ‘마음의 편지를 쓰라’로 오해했고, 소문이 퍼져 내가 동기를 부추겼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정작 당사자인 동기는 나를 변호하기를 거부했다.
“미안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너를 위해 나설 수 없다.”
그렇게 이것이 내 군 생활 첫 루머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잠도 자기 쉽지 않던 아픔은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더 힘들었다. 시간은 꽤 흘렀는데도 병원에서는 침만 놔주는 상황이었고, 수개월째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나조차도 하나님께 정직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간이 지나 MRI 촬영을 할 수 있었고, 힘줄과 연골이 찢어져 있어 수술을 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아픈 게 맞았다는 증명으로 잠시 기뻤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좋을 리 없었고, 수술 후 증명되어 더더욱 할 수 있는 게 없던 나는 더 작아졌다.
7개월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고, 나는 7월에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중대장에게 말했지만 중대장은 그것이 사실인지 의심했다.
군 병원으로 가기 전 치료도 받지 못하던 부대 의무실에서의 시간이 가장 외로웠다. 부대 사람들의 눈치와 함께 1년 넘게 남은 군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깜깜했다. 하나님에게 미친 듯이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왜?’라는 질문보다도 ‘어떻게 하시려는지’가 더 궁금했다. 나의 잘못으로 다친 어깨를 가지고 원망하기에도 웃겼고,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은 당연했기에 그것을 바꿔 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군대에서 아픈 후임이라니 아니꼽게 보는 게 당연했다.
그저 아픈 내가 답답할 뿐이었다. 더더욱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믿어지는 약속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정할 수 없는 지난 삶을 기억하며 말씀과 책을 읽고, 기도하며 질문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말씀만 붙들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 두 가지 약속이 내 마음에 분명히 믿어졌다.
-
주위 사람들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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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개를 들어 주실 것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바꾸어 주실지, 또 어떻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고개를 들어 주실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게 마음 깊이 받아들여졌고, 그냥 그렇게 믿어졌다.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가까운 군 병원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는 게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 바뀔 일 전혀 없다던 포대장님이 바뀌었고, 새로 오신 분의 도움으로 그곳에 갈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고 계신 중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방침에 따라 한 달 만에 부대로 돌아왔지만, 목적과는 다르게 회복은 미미했다. 부대에서는 내 어깨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픈 것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함께 고생하지 못하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일 수가 없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쓸모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찾아다니며 쓰레기라도 주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갓 들어온 후임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말, 그리고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작고 미미한 일이었다.
훈련 때마다 함께하다가도 어깨의 한계로 어느 순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무력감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기도 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을 뭐라 변명할 수도 없었고,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바뀐 사람들
나에게는 도저히 답이 없었다. 그러다 말씀만 읽던 내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부대에 큰 사건이 터져 몇 사람들이 새로운 인물로 대체되었는데, 어쩌면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간부부터 병사까지, 나를 괴롭히던 바로 그 인물들만 교체되었다.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간부나 병력이 그렇게 교체된다는 것이 얼마나 이례적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온 사람들은 나를 새로 봐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일거리를 주었고, 그때부터 나는 이런저런 이름의 직책들을 받으며 바빠지기 시작했다.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고, 나에게는 너무나도 기적 같은 기도응답이었다. 감사하다는 말로 하루하루 일기를 적어나갔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받는다는 분대장 견장도 내게는 의외의 일이었다. 내가 맡을 확실한 직책이 없었기에 주어진 이름이라 생각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목소리 내어 말을 해도 되는 명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후임들을 격려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고개를 들어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이었구나 하며 감사했다.
그때쯤 전했던 하나님을 받아들인 친구가 생겼고, 매일 밤 함께 성경을 읽고 하나님에 대해 나누는 즐거움으로 기뻤다. 힘들었던 군 생활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한 영혼 때문에 이곳에 온 거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 따위가 뭔데 이 영혼을 만나게 해주셨을까’라는 감격 속에 시간을 보냈다.
힘들었던 군 생활의 전반부와 달리, 나머지 반은 감사함으로 쓰여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해할 수 없던 그 약속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셨다.
확실한 시야
병장이 되고부터는 전역을 준비하며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그렇듯 전역 후는 새로운 시즌이라고 느꼈고, 지금까지 이끄신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말씀하신 것이 있었고, 묻고 또 물어 조금의 확신이 느껴졌을 즈음, 전역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 일이 생겼던 것이다.
비전이란 내가 평생 어떤 시야를 보고 살아가도록 돕는 안경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무엇이 행복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담대함이었다.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보여주신 세계 지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금까지도 꿈꾸게 하신 하나님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곧 죽는다 해도 내가 할 일, 내가 갈 곳을 확실히 알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 상황이 받아들여졌다.
내가 진짜 죽는다면? 하나님은 내게 전 세계를 다니는 꿈을 주셨는데… 아, 시야구나.
그런 시야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 수 있었고, 이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휴가 반납과 전역 연기는 내게 고민할 선택지가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나는 “갈 수 있어도 못 가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군 생활 내내 스스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 말하며 살아왔고, 나를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된 이들도 있었다.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나는 뱉어놓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런 내가 정작 그 상황 앞에서 나라는 사람을 부정하고 떠날 용기는 없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복음을 전할 역할은 나라고 생각했다.
전역 연기를 하겠다고 서명하는 일은 내게 대단한 결단도, 용감한 선택도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떨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차이는 기분 같기도 했다.
그러나 포병 부대였던 우리 부대에서 포탄도 제대로 못 드는 어깨를 가진 나는 병력으로서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전역 연기는 병력으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랬기에 뉴스에 이름이 실리는 것도, 표창을 받는 것도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틀 후, 언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끝을 예상할 수 없었던 대기 시간이 너무나도 빠르게 합의로 진행되었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머리 드시는 자
한참 미루어질 줄 알았던 전역도 본래 날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나는 가지고 있던 휴가도 다 쓸 수 있어 곧바로 나오게 되었다.
카톡과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의 걱정을 확인하며, 휴가를 나가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말 그대로 우여곡절 끝에 나온 마지막 휴가. 나 또한 어느 사람들처럼 전역 후의 계획을 준비하게 되었다. 다시 맞은 일상은 첫 휴가 나왔을 때처럼 모든 것이 감사했다.
그렇게 나는 전역 전날 다시 복귀했다. 지금껏 선임들 전역을 보던 것과 다르게, 나는 사단 본부에서 전역식을 갖게 되었다. 꽃목걸이와 집까지 데려다 주는 차에는 나와 내 동기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투스타라는 군대의 높은 사람 앞에서의 전역이었다. 그리고 전역 신고를 하며 경례를 하던 그때 알았다.
나의 머리를 들어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었구나.
전역을 신고하던 그 순간, 힘들었던 시간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지금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영광과 그 고난은 비교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이루시는 방법은 역시 그분의 방식대로였다. 나의 노력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은혜, 그 자체였다.
나는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절대적인 것임을 믿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열심히 하여 하나님을 높이겠다는 생각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며, 예전도 지금도 앞으로도 가장 높으신 절대자이시며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되신다.
남겨진 흔적
입대하기 전, 누군가 내게 말했다.
“아름다운 간증을 많이 만들고 오라.”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간증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분의 신실하심을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드러내셨다.
내 어깨에 남은 수술 자국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음을 기억하게 하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흔적’이다.
수술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고통을 주는 이 어깨는 매 순간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네 힘으로 하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그분은 너의 신실한 하나님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