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술에 취한 아버지의 괴성으로 성경 읽기를 멈춰야만 했습니다. 벽과 방문을 치는 소리와 욕설은 오랜 시간 계속됐고 무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화도 났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안 중에도 없는 것 같은 모습에 화도 났지만 그보다 내 안을 화로 끓게 하는 건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었던 나, 정말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 이런 우리를 신경은 쓰시는지, 우리의 아픔을 보시긴 하시는지. 세계복음화처럼 큰일이 아닌, 당신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를 생각은 하시는지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꿋꿋이 말씀을 읽어가시던 어머니께도 따지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여러 감정을 억누르고 울먹이며 말씀을 읽어나가 보았습니다. 어머니와 나 자신이 불쌍히 여겨지는 그 순간,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런 상황에 무슨 위로가 있을까? 그렇게 읽다가 지쳐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가기로 약속 되어 있었던 예배 자리도 너무나 가기 싫었습니다. 예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과 감정에 용납되지 않았고 그만큼 차갑고 강퍅해진 나였지만 찬양인도를 하는 지인과 하필 며칠 전에 내가 먼저 초대한 동생의 연락에 피하고 싶었던 자리에 나아가게 됐습니다.
예배의 자리, 내 상황을 따지고 싶고 마음을 토해내고 싶었는데 찬양이 시작되는 그 순간 내 안에 짧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게” 짧은 네 글자, 그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너는 내게 소리 지를 수 있잖니...눈물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 불평만 늘어놓고 싶은 이 순간 나는 나에게 왜 이러세요? 하고 소리 지를 대상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없었습니다.
벽을 치고 소리치는 울부짖음 속 당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이해하려거나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게 듣기 싫어 나의 고통이라며 그 상황을 싫어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도 세세히 아시지만 아버지의 마음도 세밀히 느끼시는 분이셨고 그런 자신에게 나아오지 못하는, 나아올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버지에 대해 절절하게 마음 아파하시는 것을 그 짧은 음성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과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아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게 그렇게도 슬프고 하나님의 마음이 절절한지 우리는 쉽게 놓치고는 합니다.
오늘 같이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답답한 일에 분노와 슬픔이 함께 몰려올 때, 말씀과 함께 기억해봅니다. 너는 내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렘33:3]. 내 상황, 내 마음 이미 다 아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 때 주님이 하실 놀라운 일을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