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1장 8절
오늘 나눌 본문 말씀은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선교라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던 분들이라면 굉장한 말씀이죠. 성령을 받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특정한 몇 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걸,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의 필드: 필리핀과 기니비사우
저희가 만나는 아이들은 두 곳에 있습니다. 필리핀,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의 아이들입니다.
필리핀은 잘 아시겠지만, 기니비사우는 아마 이 이름을 알고 계셨던 분들이 정말 몇 분 안 되실 거라 생각이 됩니다. 왜냐면 유명한 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아프리카 하면 유명한 사자나 코끼리, 무슨 사파리, 수출품, 이런 건 하나도 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알 이유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 나라 기니비사우,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는 꽤나 여행으로 자주 갈 수 있는 필리핀. 이 두 나라가 가까운 나라가 아님에도 저희의 필드(Our Field)입니다. 단순히 이 두 나라를 가봤다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하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작년에 결혼한 신혼부부인데요. 작년 3월에 한국에서 결혼예배를 드리고, 바로 필리핀으로 넘어가 두 달 동안 빈민촌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5월, 필리핀에서 한 번. 그리고 7월에는 아프리카에서 한 번. 한 번도 어렵다는 그 결혼식을 총 세 번이나 할 정도로, 해야 했을 정도로 저희에게는 아주 의미가 큰 두 곳입니다.
저희는 2022년에 기니비사우를 함께 갔었고요. 다녀오자마자 제게는 은과 금도 없으나, 다이아몬드는 더더욱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 하나만으로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다 하며,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결혼하자고 말하고 결혼을 했거든요.
갚을 것 없는 이들과 함께한 잔치
그런 저희인데도 저희가 자주 나눴던,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또 선교하는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있었습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도 불리는 결혼식을, 만약 결혼식을 한다면 누가복음 14장의 말씀처럼 잔치를 베풀거든 갚을 것 없는 이들에게 베풀라는 말씀을 가지고 결혼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저희 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십여 년간 만나고 있는 필리핀 빈민촌인 바세코의 아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를 하자! 그리고 우리가 함께 주님을 전하고 사랑했던 기니비사우 마을 사람과 함께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
그렇게, 우리 바세코의 아이들이 직접 진행해준 필리핀 전통 방식의 결혼식을 하며, 아이들과 빈민촌 사람들을 먹이는 잔치를 했고요. 아프리카에서는 무슬림밖에 없는 쿵파라는 마을에서 40명의 한국인이 함께해줬거든요. 정말 많이 모였던, 몇 백 명이 된 것 같아요. 이들 앞에서 주님을 노래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결혼식을 진행했습니다.
29살, 처음 땅끝을 향해
저는 29살 때 처음으로 기니비사우 땅을 밟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 어디 간다고?" 할 정도로 주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무도 모르는 나라였고, 당시에 가장 싼 티켓을 구매해서 갔더니 50여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는데, 쿵파라는 남쪽 마을까지는 차를 타고 12시간을 더 들어가야 했습니다.
사실 거리 자체는 짧은데 길이 얼마나 험한지, 차를 타는 건지 배를 탄 건지 흔들리고, 웅덩이에 빠져서 내려서 밀기도 하고,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춰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 가는지도 모르고 12시간 가까이를 차 안에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한국에 돌아갈 방법은 없겠구나. 병원도 없는데. 그냥 여기서 죽겠구나.' 저는 처음 갔을 때 제 네이버 블로그에 유언장을 올려두고 출발을 했었어요.
그렇게 남쪽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정말 와, 땅끝을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벅차올랐습니다. 드디어 내가 땅끝에 다다르고 있구나. 내가 드디어 꿈에 그리고 그리던 곳에 왔구나. 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7살 때부터 품어온 꿈
저는 7살 때부터 선교사가 꿈이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선교사라는 단어보다는, 장래희망란 칸에 꾸겨 넣더라도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적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꿈은 다 바뀐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저는 어떻게 가장 멋진 꿈에서 덜 멋진 꿈으로 바뀌게 되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당시에 읽던 책들은 선교사님들에 관한 만화책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의 열정과 희생을 보며 '나도 이런 선교사가 돼야지, 나는 이런 하나님의 사람이 될 거야' 하며 더욱더 선교지 나가기를 꿈꿨습니다.
14살, 첫 선교지 바세코
그리고 14살, 꿈에도 그리던 첫 해외 선교를 나가게 됐습니다. 10일간 필리핀 단기 선교. 바세코. 필리핀에서도 어디 오지에 있는 곳도 아니에요. 수도인 마닐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닐라 대성당이라는 유명한 관광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현지 사람들은 절대 가지 않는다는 더럽고 냄새가 나는, 그리고 범죄가 매일 일어나는 곳. 일명 쓰레기 마을입니다.
필리핀의 각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고 쫓겨나서 쓰레기장에 모여 살기 시작하며 형성된 아주 거대한 규모의 쓰레기 마을이에요. 선교를 꿈꿨던 제가 만난 첫 번째 선교지였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곳을 제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지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4년간 필리핀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 청소년들끼리 공동체 생활을 하며 지냈는데요, 여러가지 쉽지 않은 일들도 있었지만 저는 매주 바세코를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어렸지만 도울 수 있는 사역들을 도왔습니다.
사역이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선교단체에서 자라면서 여러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중에 하나는, 가난한 곳이다 보니 구제사역이 집중됐는데, 밥을 먹이고 학교를 세워주는 것도 너무나도 좋은 사역이란 건 알겠지만, 뭔가 제가 꿈꿨던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죠.
제 꿈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사역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더 다가가 친구가 되고 싶었어요. 그렇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깐잠깐 방문해서 돕는 것으로는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선교사 훈련을 받으며 현지 학교를 다녔던 저는, 그곳에서도 내가 꿈을 살기 위해선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알려진 필리핀이지만 현지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그렇게까지 잘하지도 않고, 잘하는 사람들조차 정말 진지한 대화, 깊은 대화는 현지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빈민촌인 바세코는 말할 것도 없이 영어 쓰는 사람 찾기 어렵고요.
그래서 열심히 현지어를 공부했습니다. 영어도 배우고 있는 저였지만, 매일 영어와 현지어 단어를 노트에 적으며 외우고 다녔습니다. 이유는 하나,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2013년, 홀로 바세코로
훈련을 마치고 그 선교단체를 나오게 된 뒤에도 제게는 그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3년 홀로 아이들을 만나러 두 달간 선교단체와 상관없이 바세코에 들어가 지내게 됐습니다.
사실 한 건 없었습니다. 두 달간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과 뛰어놀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아이들과 또 뛰어놀고. 아이들을 찐하게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꾸야는 나의 진짜 친구야"
그리고 두 달의 마지막쯤, 저를 계속 쫓아다니며 앵기며 놀았던 7살의 한 아이가 저랑 놀다가 한 마디를 했습니다.
"꾸야(형이란 뜻인데요), 꾸야는 넌 다른 외국인들과 달라. 꾸야는 나의 진짜 친구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내가 앞으로 살아갈 모습, 내가 가장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신 주님처럼 친구가 되는 일을 해야겠다. 제 선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두 달의 마지막 날, 아이들을 한데 모아서 예수님을 이야기해주고 "돌아올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말로는 항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돌아올게라는 약속을, 그 고정관념을 가진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고자, 매년 지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찾아가 만나고 있습니다.
그 아이, 와삐가 지금은 정말 많이 성장해서 17살이 되었고요, 정장까지 입고 제 결혼식에 참여했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와삐와 앉아서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와삐야, 지난 10년간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왜 거길 계속 가느냐고, 니가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게 무슨 사역이냐고, 한국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스탑하고 거길 가냐고, 바보 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 나는 사역자도, 너도 알다시피 너에게 많은 걸 해줄 수도 없어. 그런데 내가 이렇게 매년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진짜 친구라고 했던 너의 그 한 마디 때문이었어. 그리고 내가 너의 진짜 꾸야가 되고 싶었어. 내 따갈로그가 많이 부족해서 항상 잘 말해주지 못했지만, 내가 이렇게 올 수 있었던 이유, 자격 없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진정한 아버지,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시는 나의 구원자가 계셔. 그리고 그분이 널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해. 지난 모든 시간 이곳에 오는 것이 내게 어렵지 않았던 건, 내게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 시간이 있어서가 아니라,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야. 내가 너무 사랑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니까.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듯 너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주님이 나를 통해 말씀하고 싶어하시니까. 그래서 나는 여기 오는 게 너무 좋았고 어렵지 않았어."
고맙다며 서로 안고 울었고, 마음을 다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와삐는 아주 어렸을 때 무슬림 가정에 입양이 되어 무슬림으로 커왔는데요, 그날 그 대화를 계기로 지금까지 아직은 과정 중에 있지만 제 현지 친구들을 통해서 조금씩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것이라곤 아이들과 노는 게 다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너무 없다 보니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저 뭔가를 주는 사람으로만 인식되어 있는 선교사나 외국인이 아닌,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혼내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고, 제가 준비한 선물을 주기도 하지만 또 아이들의 예쁜 선물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형, 오빠가 되어주는 것. 이게 제가 매년 두 번씩 아이들을 찾는 이유입니다.
모로뷰: 홀로에서 우리로
그리고 저는 현재 홀로 하던 일을 한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로뷰(Moroview, More of You)라는 공동체인데요. 하나님으로 더해지자는 뜻을 가진 저희 모로뷰. 이 무브먼트는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지만, 2016년부터 이웃과 선교지를 향해 움직이는 이 팀을 이루게 되면서, 홀로 하던 일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는 일이 되었고, 저 혼자서는 소수에게 집중했던 시간이 더 많은 아이들과 교제하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교회로 이끄는 작지만 또 강한, 교제를 중심으로 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땅끝은 도대체 언제 가는 거지?
다시 돌아가서, 그런 과정을 경험하고 있던 2018년 말. 제 나름대로 영어학원에서 선교사라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며, 매달 버는 돈으로 필리핀에 가고 모로뷰를 만드는 데 집중했던 그때, 갑자기 '땅끝은 도대체 언제 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그 의미가 물리적 땅끝만이 땅끝은 아니지 않냐고. 그 말씀을 외우고 또 외우고 제 표어처럼 여겼던 저는, 정말 예수님을 전할 사람이 없는 곳,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습니다.
기회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는, 기다릴 일이 아니다, 내가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지고, 무작정 오지 중에 오지에서 선교하신다고 하는 한 선교사님께 연락을 드려,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 하나 없던 기니비사우로 떠났습니다.
이제 내가 너와 함께 꿈꾸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여,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땅끝까지 다다른 것 같아 감격하며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곳이 정말 제가 꿈꿨던 곳인 것 같습니다. 제가 꿈꿨던 곳이 맞나요?'
그리고 그때, '그래 맞다. 네가 꿈꿨던 곳이야. 그런데 이제 내가 너와 함께 꿈꾸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어떤 꿈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커녕 크리스천도, 복음을 전할 선교사도 없다. 네가 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라.
코로나, 그리고 모인 사람들
저는 바로 다음 해 들어가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필리핀 바세코도 가고, 기니비사우도 가고.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며 처음에는 우리나라 국경도 닫혔었잖아요? 그러면서 정말 그동안 해온 모로뷰를 더 단단하게, 또 함께 갈 팀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제자훈련에 힘을 썼습니다.
코로나로 교회들이 무언가 할 수 없을 때, 저희는 교회가 아니다 보니 청년들이 모로뷰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더 심해지면서는 온라인을 통해 제자훈련을 진행했는데,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 있는 분들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고팠던, 예수님을 나누고 믿음의 성장을 바랐던 여러 나라의 친구들까지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에는 어떻게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지 함께 고민하고 도전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세코와 기니비사우 이야기를 하며 함께 하자고 초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코로나가 아주 심했던 시기였지만 2021년, 제자훈련을 통해 함께하게 된 다섯 명이 기니비사우로 향했습니다.
두 번째 기니비사우, 전력질주
그렇게 두 번째 기니비사우는 정말 전력질주하듯 언어를 배웠습니다. 일주일 만에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는 복음 전하기 대본을 다 외운 저는, 참고로 언어가 엄청 쉬워요.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 누구나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언어가 쉬워요. 그래도 제가 그렇게 밤낮으로 외운 현지어를 가지고 다가가니, 학생들의 마음도 열려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또 마지막이 됐을 때, 자기는 이렇게도 예수가 궁금해진 게 처음이란 말을 했는데, 어떻게 제가 안 갈 수가 있었겠어요. 내년에 무조건 돌아와서 이야기해줄게, 하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온라인 제자훈련을 개설해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유명한 교회도 단체도 아닌 이름도 없던 모로뷰 제자훈련 모임에 참가 신청서를 냈던 사람 중 하나가, 지금의 제 아내였습니다. 게다가 책 모임 과정을 통해 모두에게 함께 가자고 콜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처음부터 자신을 누구도 선교사로 파송해준 적 없지만 지금 있는 자기 자리에 선교사이며, 언제든 부르시는 곳으로 갈 준비가 됐고 기다리고 있다던 아내는, 기도하고 말씀의 확신을 받았다며 2022년, 다른 세 명의 모로뷰 팀원들과 함께 다섯 명의 한국 청년들이 기니비사우로 다시 향했습니다.
요한복음으로 가르친 영어캠프
저희는 매년 무슬림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캠프를 진행하며 아이들과 먹고 마시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제하며 예수님을 전해주는데요, 그해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영어 수업 교재를 요한복음으로 바꾸면서까지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뇨,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오후에는 아이들과 1:1로 대화하며, 또 밤에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찾아가 기도해주며 예수님을 알려주었는데요, 그런 어느 날 한 학생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고 있는데 눈을 떠보니 그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예수가 진짜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세코의 선포
그리고 한 학생이 더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을 통해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던 세코라는 아이였는데, 이 아이는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의 박해가 무서워 결정을 하지 못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 계셨던 선교사님의 10년의 사역 동안 첫해 개종했던 모하메드라는 친구가 유일한 개종자였는데, 이 모하메드가 받은 박해가 여느 무슬림 나라처럼 강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왕따를 당하며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던 세코였기에 세코는 계속해서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속된 저와 친구들의 방문을 통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 세코는, 그해 캠프 동안 매일 함께 말씀을 읽는 모임에 참여하며 처음으로 공동체가 무엇인지, 함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어느 날 밤 세코는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에 멈추지 않은 세코는 캠프의 수료식 날,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며 제 성경책을 빌려 나가더니 아이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고, 외국인의 종교가 아닌 나의 하나님, 진리인 이 길을 걷겠다."
놀라운 시간이었습니다.
몰라: "Why Not?"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렇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마을로 돌아온 저희는 두 달간의 시간을 더 보냈는데요. 캠프와는 달리 아이들을 더 깊이 만날 기회가 없어 저녁에 영어 수업을 열었습니다. 그 핑계로 예수님을 더 이야기해주기 위함이었죠.
그때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공부 욕심이 있었던, 유일한 개종자였던 모하메드의 동생 몰라라는 아이가 공부를 하기 위해 저희 방에 와서 자게 됐었습니다. 그 첫날 밤, 그냥 재우기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에 '같이 성경 한 장 읽고 자자' 하고, 선생님 말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함께 읽고 잤던 몰라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어쩔 수 없이 참여했을 거라 생각했던 저희 묵상 모임에 함께 한 몰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에 이렇게 적는 거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저는 당황하기까지 했는데, 또 조심스럽기도 해서 며칠 뒤 따로 이야기하자고 둘이 앉았는데, 그때 첫날 밤 성경 한 장을 같이 읽는 순간 예수님이 진짜라는 게 믿어졌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나 몰라와 다시 대화를 했는데, 몰라가 집에 돌아갈 때마다 어머니가 손을 붙잡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네 형 모하메드처럼은 되지 마라.' 어머니께서, 또 가족이 그렇게 싫어하는지 알고도, 모하메드가 경험했던 사람들의 따돌림과 어려움을 제일 잘 알고 있을 몰라이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고 싶냐고.
"우리 어머니는 그저 사람을 무서워할 뿐이에요. 나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서워하겠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 우리 학생들 중에 사람들이 무서워서 발을 내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실제로 그랬습니다. 제게는 정말 사람들에게는 비밀이라며 자기가 진리를 깨달았다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사람들이 무서워 떠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저희의 마지막 예배 때 그런 아이들을 부르려고 하는데, 그 아이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 아이들 앞에서 네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니, 몇 명만 알던, 소수만 알던 너의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걸, 이제 마을에 소문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뜻해.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때 몰라는 저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습니다.
"Why Not? 안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저는 그날 몰라와의 대화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말한 몰라는 그날부터 우리와 함께 더욱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법을 배우고, 또 함께 여러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예배 날, 무슬림 친구들이 모였던 자리에서 선포했습니다.
"나는 무슬림이었고 알라를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신을 몰랐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죄인이었고,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나의 죄를 사하셨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고, 그분을 따르겠다."
기니비사우에 성경이 없었다
그런 결심을 한 몰라에게 저희 모두 선물해주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성경이었죠. 매일 우리의 성경을 빌려가 한참을 보고 또 보고 읽고, 더 소중히 여겼던 몰라에게 몰라만의 성경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기니비사우에 성경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탄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번역도 다 됐는데 어떻게 성경이 없을까, 대체 왜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또 왜 누구도 이 성경을 보내주지 않는 걸까. 많은 게 걸려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탄스러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은 단숨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가서 만들어 올 수 있지 않을까?' 팀원들 사이에서 나온 이 말에,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이구나, 주님의 초대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을 인쇄한다는 것, 책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어렵다는 성경책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어떻게 되는 건지 방법도 없었고, 우리 중에는 이번 기니비사우로 모든 돈을 다 털지 않은 사람도 없었고, 어디 유명한 교회에 말할 유명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돈 한 푼도 없이, 저는 진짜 계좌에 0원이었거든요.
하지만 한 나라에 말씀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주님이 제일 부어주고 싶으실 텐데, 이 일은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니 우리가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주님이 반드시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에 우리를 초대해주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글이나 펀딩 사이트에 올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우리가 증인답게, 비효율적이더라도 한 사람씩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자고, 매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들
그렇게 일어난 일들을 다 말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연락처도 없던 성경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분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것도, 성경책 완본뿐 아니라 전도에 용이하고 사람들이 보기 좋은 쪽성경, 그리고 책이 몇 없는 이 나라 현지어로 된 그림책을 함께 가져가기를 꿈꿨는데 앞으로 함께 할 사람들이 연결되었고, 또 컨테이너 전문가와 연결되며 아프리카 컨테이너 보내는 일이 관세 문제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시던 그분께서, 처음에는 직접 성경 배달을 해보라고 하시면서 20명 정도 모아보라고 하셨는데 40명까지 모인다면 최고겠죠라는 말에 40명을 품었던 제 심장이 얼마나 뛰었는지.
그렇게 20명 정도 모였던 때에, 성경은 하나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래전에 미얀마와 북한에 성경을 보내려고 준비를 다 해놨지만 못하게 되어 한으로 여기고 있었다던 한 장로님을 만나, 기니비사우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모든 걸 책임지고 만들겠다며 5,000권의 성경을 제작해 주셨을 때도, 그 성경들을 옮기는 일에 마지막까지도 모이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제 인스타그램을 보고 예수전도단 팀이 함께 하게 되면서, 결국 정확히 40명의 한국인이 성경을 들고 기니비사우를 향하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준비하며 결혼식을 세 번이나 했던 것도.
주님은 그저 그 주님의 꿈에 참여하겠다고 몸을 던진 저희에게 그 모든 일들을 보여주셨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게끔 주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유, 안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너무 멋지신데, 그분을 더 가까이, 그분을 더 맛보고, 그리고 그분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죠.
지금, 컨테이너를 준비하며
작년 10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저희는 기니비사우에 보낼 컨테이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된 만화전도지, 쪽성경, 그리고 성경 완본 5,000권을 더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모금 중에 있는 것이죠. 하지만 총 1억 원 정도 들 것 같은 이 프로젝트에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올해 여름에도 진행될 영어캠프 가운데, 선교에 대한 열망을 가진 필리핀 빈민촌 현지 친구와 가려고 하는데요. 결국 이 만화전도지와 성경책을 통해 주님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재정도 재정이지만 함께하는 저희 팀을 위해 여러 모양으로 함께해주시길, 기도해주시길 초대드립니다.
참고로 만화전도지는 한 권에 300원, 마가복음 쪽성경은 200원, 성경 완본은 1만 원 정도가 듭니다.
마지막으로: 모하메드
마지막으로 한 친구를 소개해드리며 마치고 싶습니다. 여러 번 언급했던 '모하메드'라는 친구입니다.
처음 기니비사우를 갔을 때, 홀로 크리스천이었던 모하메드는 무슬림 친구들 사이에서 저 멀리 떨어져 혼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어떤 게 가장 힘드냐고.
"부모님도 가족도 친척도 내가 길바닥에 죽어도 나를 모른 채 할 거라고 해. 그리고 다 들리게 나를 욕해. 하지만 그런 어려움보다 나를 가장 외롭고 힘들게 하는 건, 이 성경을 읽을 때 너무 기쁜데 이 진리를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외롭고 힘들어."
그 말을 듣자마자 말했습니다. "모하메드, 내가 네 친구가 되어줄게. 내가 너의 형제가 되어줄게. 내가 너에게 계속 올게."
그리고 작년, 40명의 한국인들에게 빙 둘러 싸여 모하메드를 축복하는 자리에서 모하메드에게 말했습니다. "모하메드, 나뿐이었는데 이렇게도 많이 왔네. 네 가족이야." 모하메드는 너무 행복하다며 글썽였습니다.
안 갈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주신 말씀 하나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모하메드밖에 없었던, 무슬림 100%였던 쿵파라는 마을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수 마을이 될 거라는 것을. 저희 팀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미친 생각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미친 생각은 저희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크신 하나님 믿고 가는 이 길에 여러분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모하메드, 세코, 몰라에게 너희 가족들이 너를 알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