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뭔데
네가 뭔데? 라는 말만큼 어떤 상황에 쓰이던지 기분 좋지 않은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들은 몇 번의 이 말은 제 마음을 아주 상하게도 했고 스스로 주제넘음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네가 뭔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담을 공부하며 이 진로에 의심 없이 달리던 어느 날, 과제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해야 했습니다. 소수였지만 강의 자체가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두 사람 이상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밤을 새워 열심히 준비한 강의를 시작하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적은 숫자이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강의 후 이 일을 오랜 시간 진행해 온 분께서 찾아와 제게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 강의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을 보았지만 너는 꼭 이 일을 해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뭔데 너 스스로를 한계 지었느냐. 한계 없는 내가 지은 너를 내 능력으로 쓰겠다.”
강하고 저릿한 울림이었습니다.
선교사를 꿈꾸며 상담을 전공으로 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좋은 이유와 동기가 있었지만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말과 경험으로 스스로를 다수 앞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계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로서의 삶으로는 한적한 마을에 이름 없이 사는 것을 꿈꿨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자랑 없이 겸손히 살려고 한 것이라 여겼지만 교만에 노출되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을 뿐이지 사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일을 미리 제한하는 아주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겸손함을 찾느냐. 겸손함은 내가 지은 대로 사는 것이다. 유혹이 많은 위험한 자리일지라도 나만을 붙잡고 승리하는 겸손한 자를 찾는다. 내가 너를 사람들 앞에 서게 할 것이며 크게 쓸 것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쓰겠다.”
주제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네가 뭔데”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릇 주제에 스스로를 한계 짓는 일, “내 그릇이 작아서” 라거나 "내 용도는 이 정도야" 라는 말만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준비되어 쓰임을 받겠다거나 아직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릇을 만든 토기장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사실 본인의 작품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실 리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신 것을 잘 누려야 하기에 공부도 하고 실력도 갈고닦지만 그 쓰임새를 생각하고 만드셨으니 작은 일, 큰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사용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그저 집혀지기만 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알맞게 아름답게 사용될 것입니다. 만드신 분께서 내가 뭔지를 가장 잘 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