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데에 비해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표현은 많이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향기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은은하고 예쁘기도 한 인상에 비해 편지는 무겁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편지는 향기와 다릅니다. 그 자체로 불특정 다수에게 퍼지는 향기와 달리 편지는 받는이라는 특정한 타켓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이름과 주소를 정확하게 기입해야만 합니다. 또한 목적이 없어 보이는 향기와 달리 편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장문이나 시, 그림 같은 여러 방법으로 담을 수도 있지만 상대방만의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받는 이로 하여금 보내는 이의 말하려는 바, 목적이 분명합니다. 보낸 이의 진심과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거나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편지는 어지간히 시간도 노력도, 지혜도 고민도 필요해서 수고롭습니다.
그런데 이 두 표현이 등장하는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 적이 않습니다. 오히려 향기라고 지칭한(고후2) 같은 사람들에게 편지(고후3)라고 말합니다.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향기이자 하나님의 영으로 쓰인 편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읽는다고 합니다. 향기로운 편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디서나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하는 말과 표정을 읽으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누군가에게는 싫어하는 냄새가 나는 불편하고 싫은 통보장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렇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런대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10v22)
바울은 편지를 통하여 여러 교회에 그 교회의 상황에 맞게 복음을 전하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향기답게 편지답게 상황에 맞게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향을 낼 수 있도록 계속해서 주님을 알아가고 주께서 작성하실 수 있도록 마음이라는 종이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향기답게 숨기지 않고 편지답게 주께서 보내시는 대상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읽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 당신의 향기로운 편지되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