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경험하는 순종
"그 어떤 것에도 하나님께 순종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컨퍼런스의 한 강사가 기도회를 이끌며 한 질문이었습니다. 익숙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정말 '그 어떤 것에도' 순종할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물어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감히 평생을 주님이 하라는 대로 살겠다고 도전하며 살았던 나였기에
바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런 순종의 경험도 있었지만
강사의 이 질문을 듣고 기도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주님, 나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무엇이든 순종하며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나도 불편했던 무언가가 떠올랐습니다. 한 나라의 이름이었습니다.
중국,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10대의 어느 날로부터 며칠 뒤
나는 중국으로 전도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무리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는 집단폭행을 당했고
그 이후로 두 달이라는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며
폭행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게다가 함께 했던 공동체에게 받은 다른 상처들까지 생겨
중국에서의 시간을 끔찍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상처를 준 모든 사람을 포함해 중국이란 나라 또한
내게 용서의 대상이었고
오랜 시간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했기에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까지 이르렀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에 있었습니다.
주님이 먼저 말씀하시면 순종할 마음이 분명 있었지만
무엇이든 순종하겠다는 말에 가려진 나의 마음,
그리고 주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먼저 가져볼 생각은 하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였습니다.
뭐든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주님의 마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를 품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선교'라는 주제로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동안 소개된
무슬림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를 들으며
내가 그동안 준비하고 꿈꿔온 곳과 달랐기에
결국 관심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에
시큰둥한 마음이 있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그저 지식으로
머리로만 생각했을 뿐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내 생각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순종하겠다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정말 내 마음을 그대로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마음만 내게 있기를 바랐습니다.
폭행을 당하고 떨었던 그때처럼 몸이 떨렸지만 이 마음 또한 바치고 싶었습니다.
몸과 입술 모두 떨렸지만 눈을 감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이 사랑하시는 중국 땅으로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세요."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순종이 아니라 완전하게 죽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마음을 기뻐 받으시고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그 기도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그저 묻고 들은 것에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이 순종이 아니다,
나의 마음에 너의 마음을 포개는 것이 먼저다."
삶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나서 생각하는 것과
읽은 지식과 경험에 빗대어 주님이 하실만한 말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마음의 방향에 초점을 두게 될 때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고 그 주님과 호흡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어떤 것에도 하나님께 순종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그 어떤 것도' 말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통해 하고 싶은 일, 아니 당신께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나를 순종의 자리로 가지 못하게 할까. 나의 경험일까.
아니면 주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일까.
주님 세상 그 어떤 경험보다
주님의 마음을 매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